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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호촌에 정착했던 선씨 본문

한국전통

복호촌에 정착했던 선씨

아로마인유월인 2022. 8. 20. 18:56

선씨는 옛부터 복호촌에 정착했다. 복호촌은 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이다. 본관은 보성 단일본이다. 보성선씨의 시조는 선윤지이다. 고려말 전라안렴사를 지낸 선윤지를 시조로 한다. 선윤지는 고려 우왕 때의 인물로 전라도안렴사로 있었다. 전라도 해안 지방에 넘나드는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정착하였다. 보성선씨는 전국의 95%이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조성과 도촌을 세거지로 하는 선용신을 시조로 하는 선씨도 있다. 후손은 5% 미만이다. 선용신은 각종 역사서나 문헌에 실존여부는 나타나지 않는다. 선용신을 중시조로 하는 도촌파이다. 선씨가 중국 노나라 대부인 선백의 후손으로 한나라 말기에 한반도로 이주하였다. 보성 지방에 정착해 살았다. 고려 원종 때의 인물인 선용신이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웠다. 보성의 옛 지명인 패주군에 봉해졌다. 그를 중시조로 보성 선씨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용신에게는 선유와 선좌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선유에게는 다시 선원지와 선윤지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이때에 와서 선윤지를 시조로 하는 갈몰파가 도촌파에서 분파되었다는 것이다. 선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2,094가구가 있다. 38,849명으로 조사된다. 대한민국 성씨 인구 순위 70위이다. 보성선씨 시조 선윤지는 명나라 때 문연각 학사였다. 1382년 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귀화했다. 전라도 안렴사로 나가 전라도 해안지방을 침범하는 왜구를 섬멸하고 민생을 안정시켰다. 조선이 개국되고 벼슬을 버리고 전라남도 보성에 은거하였다. 그 후 선윤지는 유교의 진흥에 앞장섰다. 인재 양성에 진력하며 보성에 터를 잡아 살게 되었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었다. 보성을 관향으로 삼았다. 세계를 계승하게 되었다. 선윤지의 아들 안혁이 태종 때 호조 참판을 역임했다. 증손 화는 태종 때 여산 군수로 나갔다. 선정을 베풀었다. 백성들의 진정으로 두 번이나 고을 수령을 지냈다. 고손 형은 세조때 수많은 벼슬을 거쳤다. 적개공신과 좌리공신이 되고 유성군에 봉해졌다. 사후 시호를 평양공으로 받았다. 그리고 최고의 벼슬자리에 올라 선씨 일문을 우뚝 세웠다. 그러나 선윤지를 시조로 하는 갈몰파는 명나라 문연각이 있다. 학사로 있던 선윤지가 고려 우왕 때에 사신으로 왔다. 귀화하여 전라도 안렴사 등을 지냈다. 고려가 망한 뒤 보성에 정착하였다. 보성 선씨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도촌파가 내세우는 선용신과 선유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보성 선씨의 두 분파는 서로 성씨의 기원과 시조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였다. 별도의 족보를 계승해 왔다. 그러나 모두 조선시대에 유력 인사들을 배출했다. 도촌파에는 태조 때에 수군절도사를 지낸 선중길이다.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선무원종공신으로 봉해진 선여경이 있다. 그리고 갈몰파에는 태종 때에 호조참판을 지낸 선안혁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대첩과 행주대첩 등에서 큰 공을 세운 선거이 등이 있다. 선씨의 본관이 당일본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선씨는 2000년 기준 대한민국에 12,000여 가구가 있다. 39,000여명이 살고 있다. 이는 전체 성씨 가운데 70위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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