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처음이라
한국의 서씨 본문
한국의 서씨는 2015년 조사에서 751,704명으로 집계되었다. 전체 13위이다. 가장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는 Seo이다. 2011년 외교부 여권 통계에 따르면 Seo가 약 77%이다. Suh가 약 17%이다. Su가 약 1%이다. Sur 등 기타 표기는 1% 미만이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Seo이다. 뿌리가 생각보다 많다. 개중에는 한족계도 일부 섞여 있다. 부여 서씨는 백제 왕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게 백제 왕손인 부여융이 당나라 황제에게 서씨라는 성을 받았다. 일단 기록이 없다. 하지만 바이두백과 문서에는 부여융묘지명에 부여융이 후에 서여융으로 성씨를 변경한 기록이 있다. 부여 서씨 족보의 부여융이 성씨를 서씨로 고쳤다. 이런 기록이 사실일 수도 있다. 다만 부여 서씨 족보 기록대로 당나라 고종이 서씨 성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보인다. 부여융이 스스로 중국식 성으로 고친 것이 당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걸로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밖에 동국문헌비고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경기도 이천 서아성에 자리잡았다. 성을 서씨로 바꿨다고 주장한다. 물론 기자조선 자체가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금 이 기록은 일말의 신뢰성도 없다. 사실상 한국 내 서씨들은 신라에서 아간대부를 지낸 서신일을 시조로 하는 이천 서씨가 대종이다. 서필과 서희와 서눌이 있다. 서정과 서균과 서공과 서순 등 7대 재상이 이천 서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고려 시대 때는 화려하였다. 조선 시대 들어오면서 분파인 달성 서씨와 대구 서씨에게 밀렸다. 특히 대구 서씨는 조선 후기에 크게 현달한 가문이다. 달성 서씨는 현재 서씨들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한다. 달성 서씨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경상남도에 많이 산다. 부산광역시에도 많이 살고 있다. 대구광역시에 많이 살고 있다. 대종인 이천 서씨는 경기도 이천시를 본관으로 하지만 의외로 전라남도에 살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많이 살고 있다. 서씨는 2000년도 인구조사 때 전국에 1,295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진주와 충주 2개로 그 인구는 진주 1,022명이다. 충주 232명이었다. 이들은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처음 나타난 성씨이다. 1960년에는 209명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도 서씨가 청나라 때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근대에 들어와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보인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에는 대전광역시와 경상남도 김해시에 각각 1가구 씩으로 전국에 총 2가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서씨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천 서씨는 경기도 이천시가 본관이다. 시조 서신일의 아들 서필이 고려의 내의령이다. 손자 서희가 내사령이다. 증손자 서눌이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3대가 배향공신이 되었다. 서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3명을 배출하였다. 서린은 병부상서공파이다. 서눌은 원숙공파이다. 서념은 문한공파이다. 서선은 공도공파이다. 서윤은 시랑공파이다. 서유는 양경공파이다. 서진은 교리공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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