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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씨에 대하여 알아보기 본문

한국전통

석씨에 대하여 알아보기

아로마인유월인 2022. 8. 25. 20:23

석씨의 본관으로는 경주 석씨가 있다. 성주 석씨가 있다. 성산 석씨가 있다. 밀양 석씨가 있다. 대구 석씨가 있다. 해주 석씨가 있다. 광주 석씨가 있다. 전주 석씨가 있다. 이 외 23본이 있다. 이 중 연원을 전하는 본관은 충주 석씨가 있다. 해주 석씨이다. 조주 석씨이다. 총 3본이다. 인구수는 2015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49,203명이다. 그 중 충주 석씨가 42,811명으로 가장 많다. 해주 석씨 조주 석씨 성주 석씨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당시 군권을 쥔 명나라의 병부상서였다. 위기에 빠진 조선에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래서 파병 반대파와 만력제를 설득시킨 인물인 석성의 장남 석담이 조선에 망명하였다. 그렇게 세운 귀화 본관이다. 조주 석씨 또한 석성의 아들 석재금이 세운 본관이다. 참고로 차남 석천도 1597년에 성주로 내려와서 성주 석씨의 원류가 되었다. 시조는 신라 4대 왕인 탈해 이사금이다. 본관은 월성 단본이다. 월성은 경주이다. 인구수는 2015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11,355명이다. 1번 문단의 石씨보다 훨씬 적다. 경주 김씨가 있다. 밀양 박씨와 함께 신라의 왕위 계승권이 있었다. 3대 국성 중 하나였다. 흘해 이사금을 마지막으로 권력을 잃어 몰락했다. 이후에도 왕비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신라의 귀족 위치에 있었다. 현대에도 경주 김씨와 밀양 박씨에 비해 석씨는 그 수가 적은 편이다. 석씨는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뉜다. 하지만 석씨는 족보가 위조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첫번째 계통은 조분 이사금의 3남인 6세 각간 석지의 후손들이다. 두번째 계통은 흘해 이사금의 아들인 8세 각간 석보의 후손들이다. 석지와 석보 모두 실제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직 족보에만 등장하므로 실존인물로 보기 어렵다. 이 둘뿐만 아니라 신라부터 고려 때의 석씨 인물들은 각자 지낸 벼슬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생존했던 시기나 행적 등이 전혀 없다. 정작 속일본기에 기록된 실존 인물 석양절은 없다. 석씨 족보가 위조되었다는 첫 번째 증거이다. 석지의 직계장손인 16세 석오원은 선덕여왕 때 첨성대를 만들고 분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석오원의 차남이 강수의 아버지인 석체이다. 경주 석씨는 기원전 19년이다. 시조는 석탈해이다. 혁거세 39년이다. 한 노파가 고기잡이를 하였다. 그때 한 금궤가 내려와 이를 열어보았다. 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 노파는 이 사내아이를 잘 길렀다. 시간이 지난후 그 사내아이는 키가 9척이나 되었다. 신라의 4대왕이 되었다. 중시조 석재흥이다. 석재흥은 은 탈해 이사금의 23대손이다. 고려의 문신 이었다. 경주 석씨는 총 8명으 신라 군주를 배출했다. 석탈해는 신라 4대왕이다. 최초의 석씨 군주. 석벌휴는 신라 9대왕이다. 석내해는 신라 10대왕. 석조분는 신라 11대왕이다. 석첨해는 신라 12대왕이다. 석유례는 신라 14대왕이다. 석기림은 신라 15대왕이다. 석흘해은 신라 16대왕이다. 마지막 석씨 군주이다. 석씨는 주변에 많지 않다. 하지만 석씨 이름은 특이하다. 잊혀지지 않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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