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처음이라
한국 전통 문화 비녀의 아름다움 본문
한국의 전통 장식품인 비녀를 알아보았다. 요즘엔 더 스타일이 세련되고 화려한 비녀가 많다. 비녀는 증보문헌비고에서 나온다. 단군이 나라 사람들에게 머리카락을 땋고 머리를 가리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비녀는 머리털을 정리하게 되면서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비녀는 혼인한 여인이 하던 장신구이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곱게 빗는다. 그리고 비녀로 둥글게 쪽찌었다. 다듬어 틀어 올린 머리를 풀어지지 않게 고정한다. 머리를 고정하는데 장신구 역할을 한 것이 비녀이다. 비녀는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화장 기구로 여겼다. 그래서 여성이 비녀를 잃어버리거나 빼면 안됐다. 그것은 정절이나 긍지를 잃음을 상징했다. 비녀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길쭉하게 생겼다. 다른 하나는 U모양으로 휘어있다. 비녀의 모양은 가지각색이다. 단조로운 스타일이 있다. 또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이 있다. 고급스러운 것은 귀한 것으로 사용한다. 비녀의 끝 부분이나 윗부분에는 장식의 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비녀는 고대부터 주로 여자들이 사용했다고 추측한다. 남자들도 상투를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녀머리는 종류도 꽤 다양하게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 비교적 난이도도 있는 편이다. 머리를 잘 만지는 여성들은 머리를 대충 휙휙 감은 뒤에 필기도구나 젓가락을 꽂기도 한다. 학생때 많이 했다. 쪽머리에는 비녀가 거의 필수이다. 댕기로 묶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비녀가 기혼의 머리장식이었다. 미혼의 경우는 비녀를 꽂지 않았다. 길게 땋았다. 비녀는 결혼하면서부터 사용한다. 결혼식에서의 머리장식과 더불어 머리 올린다는 표현을 한다. 그러한 유래가 여기에 있다. 비녀를 꽂은 캐릭터들도 다양하다. 검정 고무신에서는 언년이가 비녀를 사용했다. 이외에도 비녀는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사슴뿔로 만든 비녀 발견되었다. 백제 유물 중 부여에서 발견된 것도 있다. 당시의 비녀 형태를 알 수 있다. 당시 발견된 비녀는 금장식이 달린 은비녀였다. 끝이 고리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삼국사기에 통일신라시대 흥덕왕이 만든 복식금제에 나온다. 계급에 따라 비녀의 재료를 차별화되었다고 말한다. 신라의 신분제인 골품제에 따라 진골녀는 진주 장식울 금하였다. 6두품 여성은 순금 사용을 금하였다. 평민 부녀자에게는 유석을 사용하게 하였다. 신분에 따라 비녀의 재료가 달랐다. 상류 계급은 금과 은과 옥을 사용하게 하였다. 서민 계급은 나무와 뿔과 뼈 등으로 만든 비녀를 사용하게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고대 이후 여자들의 머리 형태가 거의 이어져 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청동과 금동으로 만든 비녀에 꽃과 새 문양이 음각되어 있다. 악학궤범을 보면 조선 초기에는 모양도 알아 볼 수 있다. 금 또는 도금을 하였다. 진주로 꾸민다는 기록이 있다. 비녀는 장신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비녀 형태가 대부분 여인의 절개나 길상적인 의미를 나타냈다. 그리고 부귀와 장수와 다남 등을 기원했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덕목에 따라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였다. 비녀는 매화와 대나무 문양의 비녀를 즐겨 사용하였다. 단오에는 잡귀를 없애기 위하여 사용했다. 비녀는 사용하는 형태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머리를 꾸미는 장신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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