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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청자 본문

한국전통

고려 청자

아로마인유월인 2022. 5. 6. 23:26

고려청자는 청록색을 띤 고려시대의 청자를 가리킨다. 고급 청자의 푸른빛은 따로 푸른 색소를 넣지 않아다. 비색 청자는 유약에 수많은 기포가 들어간다. 유리질 속에서 빛이 산란된다. 푸르게 보이도록 만든다. 청자를 만들 수 있던 것은 중국과 고려 두 나라뿐이다. 다른 나라에서 녹색 물감을 사용해서 시도한다. 이름 그대로 고려시대에 주로 생산되었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보고로 대표되는 서남해 무역 집단은 당나라와 교류한다. 그리고 꾸준히 당나라 도자기를 수입했다. 한동안 중국 수입으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초기 청자인 해무리굽 청자를 생산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는 고려청자를 만든 사람은 장보고라고 말한다. 청자의 본격적인 발달은 고려 초기인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중국 오대 월주요 청자의 영향으로 생산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2세기에는 나름의 특징이 나타났다. 매우 정교하고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 예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도자기 발전사에 빼놓을 수 없는 명품이다. 당시 국제적으로 최고 품질의 제품으로 취급되었다. 송나라에 사용된 수중금이라는 책에서는 말한다. 고려의 색깔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려왕조 전체를 고려도경으로 묘사한다. 비판적이고 때로는 비웃음 거리이다. 고려를 바라보던 서근조차 고려청자의 비색을 주워 찬양했다. 다른 사서들은 중국 대륙 일부 지역의 청자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당시 남성 황실을 비롯해 티베트 베트남 필리핀 일본 전역에서 유물이 발굴됐다. 상감청자는 다르다는 장인기술 덕분에 만들어졌다. 특히 고려청자는 은은한 청색의 빛과 상감기법으로 유명하다. 통상 순수한 청자가 색깔과 조형을 강조하는 시기와 상감기법을 강조하는 상감청자 시기가 있다. 몽골제국 침략 이후 쇠퇴기로 나뉜다. 고려 초기에는 순수한 청자가 유행하여 레이스 시대 이후에 기법이 발달하였고 무인 시대에 상감청자가 등장하여 정점을 찍었으며 분청사기는 몽골 아래에서 점차 쇠퇴하였다. 조선 초기까지 민간에서 인기를 끌었다. 상감청자 기법은 칠기와 청동 등의 기법과 어우러진다. 고품질의 기술로 고려 공예의 뛰어난 기법을 보여준다. 상감청자 장식이 점점 화려해진다. 청초한 문신에 비해 청자에 대한 깊은 안목이 없다. 무신론 정권이 형형색색의 무늬가 많은 상감청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느 수준이 높으냐 낮은 가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기술의 발전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비색 청자에 쓰이는 유약은 나뭇재에 보석의 일종이 나모석이다. 그리고 장석과 성회를 섞어 만든다. 가마에서 굽는 중에 안쪽으로 기포가 생긴다. 그리고 투텁게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어 낸다. 조선시대 때에 청자는 유행에서 뒤처진다. 새로 유행하기 시작한 분청사기가 있었다. 그리고 백자에게 자리를 내줬다. 17세기 말엽까지는 조선청자로 불리면서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청자가 쇠퇴기에 들어간 뒤부터 비색을 온전히 내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현대에까지 유약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색 자체를 내기 위해선 철분 함량을 3프로 정도로 맞추면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 봐도 여전히 아름다운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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