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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생은 처음이라

똬리는 머리에 물건을 올릴때 사용한다. 한국에서 사용했던 짐을 나르는 운반 도구이다. 고리모양으로 생겼다. 머리에 물건을 나를때 사용한다. 머리에 받칠때 쓰인다. 똬리를 만드는 방법은 짚을 중심을 향해 팽팽하고 둥글게 엮는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손에 들고 다니기보다는 머리에 이고 다녔다. 옛날에는 짐을 옮길 때 지게와 수레를 이용했다. 물건을 등에 지고 나를 수 있는 지게는 주로 남자들이 사용했다. 여자들은 똬리를 머리에 올려 물동이를 이고 날랐다. 무거운 짐을 옮길 때는 달구지와 손수레 등을 이용했어요. 모두 우리나라 지형과 생활환경에 맞춰 만들어진 것들이에요. 물동이를 비록하여 장에 갈 때도 사용한다. 밭에 음식물을 나를 때도 머리에 물건을 올려서 이동한다. 똬리는 머리가 아프지 않게 받치는 ..

한국의 주방가구가 있다. 바로 소반이다. 소반은 전통 공예이다. 식기를 받치는 작은 규모의 상이다. 우리나라 좌식생활을 보여준다. 소반은 식기를 받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쓰는 작은 상이다. 다른 가구와 달리 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한 생활필수품이다. 부엌에서 사랑채나 안채로 식기를 받치고 옮기는 쟁반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함께 방안에서는 상의 본래 용도로 쓰인다. 상과 반은 멀리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사족반과 원형 삼족반을 볼 수 있다. 또한 무용총 벽화에서는 다리 없는 쟁반과 말굽 모양의 다리를 가진 둥근 소반을 볼 수 있다. 신라토기 중에서는 타원형 소반 그릇이 있다. 소반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이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서양과는 달리 조리된 음식을 방으로 옮겨와 식사를 해야한다. 소반은 ..

경주에 있는 문화유산에 다녀왔다. 바로 천마총이다. 천마총은 경상 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다. 조성된 고분 공원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황남동 98호 분의 내부를 개방하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 수립됐다. 98호 분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무덤이다. 발굴을 위해서 이 무덤보다 작은 무덤을 발굴하였다. 그리고 경험과 정보를 얻었다. 그다음 본격적으로 발굴할 방침을 세웠다. 155호 분을 먼저 발굴했다. 1973년에 문화 공보부 문화재 관리국에 의해서 발굴 조사했다. 천마총 155호도 큰 무덤이다. 가장 크고 거의 완전한 무덤이다. 신라 왕릉에 관한 많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무덤의 흔적은 경주 분지의 거의 중앙에 위치한다. 논과 밭이 있다. 민가가 밀집한 평지에 속하는 서천과 남천의 퇴적물로 구성..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있다. 첨성대는 신라시대의 천문대이다. 용도는 별을 보는 것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첨성대의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도 명칭과 용도의 기록이 있다. 또한 사람이 올라가고 내려간 기록이 있다. 실제로 사람이 들어가기엔 내부가 좁았다. 불편했을 것이다. 광복 이후에는 새로운 견해가 나타났다. 첨성대의 역할이 천문대가 아닌 기념비 혹은 제단이나 창고였다는 설이 등장한다. 다양한 설이 있다. 신라 왕궁 터에 위치한다. 반월성의 북서쪽 성곽에 있다. 약 300 m 떨어진 지점에 있다. 국보 제31호이다. 그 원형을 유지하는 것 가운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한반도 고대 건축물 중 유일한 창건 당시 그대로이다. 후대의 복원이나 재건 없이 보존된 문화재이다..

1999년에는 드라마 허준이 있었다. 동의보감의 저자이다. 허준의 인생과 동양의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즘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의관 허준이 중국과 조선의 의서를 집대성하였다. 동의보감은 1610년에 저술한 의학서이다. 25권 25책이다. 1610년에 완성하게 되었다.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 이 책은 원래 1596년에 허준이 왕명을 받았다. 유의인 정작과 태의 이명원과 양예수와 김응탁과 정예남 등과 함께 찬집 하였다. 정유재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 그 뒤 선조가 허준에게 다시 명하였다. 계속 편집하도록 하였다. 내장 방서 500권을 내주었다. 고증하게 하였다. 허준이 전심전력하였다. 마침내 1610년에 완성하였다. 왕은 곧 내의원에 명하였다. ..